[한국사 인물 6편] 몽골에 맞선 고려인들: 최충헌·김윤후·삼별초

2025. 12. 14. 11:00역사 Detox_한국사 위인들

프롤로그: 절체절명의 시대

1170년, 고려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신정변(武臣政變)이 일어나, 무신(무장)들이 권력을 장악했고, 문신(문관) 중심 체제가 무너졌으며, 왕은 허수아비가 되었고, 무신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했습니다.
100년간(1170 ~ 1258년, 62년)이 가장 오래 갔으며, 그 중심에 최충헌(崔忠獻)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231년, 더 큰 재앙이 찾아왔습니다. 몽골(蒙古, 몽골제국)이 쳐들어온 것입니다.
칭기즈칸이 세운 세계 최강 제국이, 고려를 침공했고, 30년간 계속되었으며(1231~1259년, 6차 침입), 고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고려는 강화도로 도망쳤습니다.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기고(1232년), 39년간(1232~1270년) 섬에서 버텼으며, 백성들은 버려진 채, 고통받았습니다.
하지만 영웅들이 나타났습니다.
처인성에서 몽골 장수를 죽인 김윤후,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싸운 삼별초,
그리고 무신정권을 이끌며 나라를 지킨 최충헌.
오늘은 몽골에 맞선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3세기 몽골 제국 지도
13세기 몽골 제국 지도 / 출처 : 재외동포신문

 

👊 최충헌 (崔忠獻, 1149~1219년) - 무신정권의 실권자

무신정변 (1170년)

먼저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1170년 8월, 무신정변이 일어났습니다.
고려는 건국 이래 문신 중심 사회였습니다. 과거제로 문신을 뽑았고, 문신이 높은 관직을 차지했으며, 무신(무장)은 차별받았고, "개·말과 같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의종(毅宗, 재위 1146~1170년)은 문신들과 어울리며, 향락에 빠졌고, 무신들을 업신여겼으며, 모욕을 주었습니다. 한 번은 무신들이 춤추는 것을 보고, "수염에 불 붙여라!" 장난을 쳤고, 무신 이소응의 수염을 태웠으며, 무신들이 치욕을 느꼈습니다.
 
1170년 8월,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정중부(鄭仲夫), 이의방(李義方) 등이 주도했고, 의종을 폐위시켰으며(거제도로 유배, 후에 살해), 명종을 왕으로 세웠고, 문신들을 대거 학살했으며, 무신이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무신정권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왕은 꼭두각시였고, 무신 권력자가 실권을 쥐었으며,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순으로 이어졌습니다.
 

최충헌의 등장

최충헌(崔忠獻)은 1149년 무신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최원호도 무신이었고, 동생 최충수도 무신이었으며, 형제가 함께 출세했습니다.
무신정변 후, 최충헌도 권력 투쟁에 뛰어들었고, 점차 세력을 키웠으며, 기회를 노렸습니다.
1196년, 최충헌의 기회가 왔습니다.
당시 권력자는 이의민(李義旼)이었는데, 폭정을 일삼았고, 백성을 괴롭혔으며, 신하들이 불만을 품었습니다.
최충헌이 동생 최충수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1196년 3월).
이의민을 제거했고, 그 일당을 숙청했으며, 권력을 장악했고, 명종을 폐위시키고, 신종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최씨 무신정권이 시작되었습니다(1196~1258년, 62년간). 최충헌 → 최우 → 최항 → 최의, 4대에 걸쳐 이어졌고, 고려 무신정권 중 가장 오래갔습니다.
 

교정도감과 독재 체제

최충헌이 교정도감(敎定都監)을 설치했습니다(1209년).
명목은
"국정을 바로잡는 기구"였지만, 실제로는 최충헌의 사병 조직이자 사적 정부였고, 왕을 감시하고, 조정을 통제했으며, 군사·경찰권을 장악했습니다.
정방(政房)도 설치했습니다.
인사권을 장악하는 기구로, 모든 관리 임명을 최충헌이 결정했고, 왕도 간섭 못 했으며, 완벽한 독재 체제였습니다.
최충헌의 권력은 왕을 능가했습니다:

  • 왕 4명을 갈아치움 (명종 폐위, 신종·희종·강종 즉위)
  • 마음에 안 드는 왕은 폐위
  • 자기 딸을 왕비로 (강종비)
  • 사실상 왕 노릇

하지만 동시에 개혁 정책도 펼쳤습니다.
 

봉사십조 (封事十條)

1196년, 최충헌이 신종에게 봉사십조(封事十條)를 올렸습니다.
 
열 가지 개혁안으로:

  1. 왕의 사치 금지
  2. 간신 제거
  3. 무분별한 사원 건립 중단
  4. 토지 겸병 금지
  5. 관리 선발 공정하게
  6. 억울한 죄수 석방
  7. 승려의 정치 개입 금지
  8. 천민 차별 완화
  9. 왕실 재정 절약
  10. 백성 세금 감면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이었고, 특히 토지 개혁, 백성 보호에 초점을 맞췄으며, 최충헌이 단순 무뢰한이 아니라, 개혁 의지를 가진 인물임을 보여줬습니다.
 

민란 진압

최충헌 집권기에 민란(民亂)이 빈발했습니다.
무신정권의 수탈로, 백성들이 견디다 못해 반란을 일으켰고:

  • 망이·망소이의 난 (1176년, 최충헌 이전): 충청도 공주 천민 봉기
  • 김사미·효심의 난 (1193년): 경상도 운문·초전 봉기
  • 만적의 난 (1198년): 개경 노비들의 반란 시도

특히 만적(萬積)의 난(1198년)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노비 만적이 "왕후장상에 씨가 있는가!"를 외치며, 노비 해방을 시도했고, 신분제 타파를 주장했으며,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했지만, 지배층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최충헌이 이들 반란을 강경하게 진압했고, 무력으로 누르고, 주모자를 처형했지만, 백성들의 불만은 계속 쌓여갔습니다.
 

1219년: 최충헌의 죽음

1219년, 최충헌이 71세로 병사했습니다.
23년간(1196~1219년) 권력을 쥐고, 고려를 좌지우지했으며, 왕 4명을 갈아치웠고, 독재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아들 최우(崔瑀)가 뒤를 이어, 권력을 계승했고(1219~1249년, 30년), 최씨 정권이 계속되었으며, 최우 시대에 몽골 침략이 시작되었습니다.

최충헌 시대 고려 상상도
최충헌 시대 고려 상상도 / AI 생성이미지

평가

최충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긍정적 평가:

  • 혼란기에 질서 확립
  • 봉사십조 등 개혁 시도
  • 실력으로 권력 장악
  • 국정 안정

부정적 평가:

  • 왕권 무시, 독재
  • 왕 마음대로 갈아치움
  • 교정도감으로 사적 권력
  • 민란 강경 진압
  • 권력 세습 (아들 최우에게)

하지만 최충헌이 없었다면, 고려는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고, 무신들 간 권력 투쟁이 계속되었을 것이며, 최씨 정권이 62년간 지속되며, 일단 안정은 가져왔고, 곧 닥칠 몽골 침략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 김윤후 (金允侯, ?~?) - 처인성의 영웅

1231년: 몽골의 침공

1231년 8월, 고려에 재앙이 찾아왔습니다.
몽골(蒙古)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공한 것입니다.
몽골제국은 칭기즈칸이 세운(1206년) 세계 최강 군사 제국이었습니다.
기마군단으로, 유라시아를 휩쓸었고, 금나라(중국 북부)를 무너뜨리고, 서아시아까지 진출했으며, 무적이었습니다.
 

왜 고려를 쳤을까?

  • 거란 추격: 거란 잔당이 고려로 도망
  • 조공 요구: 고려가 거부
  • 정복 욕구: 세계 정복의 일환

1차 침입(1231년): 살리타이(撒禮塔, Sartai) 장군이 지휘했고,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으며, 개경 근처까지 진격했고, 귀주성(구성) 함락 등, 파죽지세였습니다.
고려 조정이 공황에 빠졌고, 최우(최충헌의 아들)가 권력을 쥐고 있었으며, 항복할지 싸울지 논쟁했습니다.

1231년 몽골 침입 지도
1231년 몽골 침입 지도 / 출처 : 엽기혹은 진실

1232년: 강화도 천도

1232년, 고려 조정이 놀라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강화도(江華島)로 수도를 옮긴 것입니다.
개경을 버리고, 바다 섬 강화도로 도망쳤으며, 몽골 기마군단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는 판단이었고, 최우의 결정이었습니다.
 
강화도의 장점:

  • 섬이라 몽골 침입 어려움
  • 바다로 방어 용이
  • 수군 이용 가능

강화도의 문제점:

  • 좁은 섬 (지배층만 수용)
  • 백성들은 내륙에 남겨짐
  • 백성 버림
  • 왕과 권력자만 안전

결과적으로 지배층의 도피였고, 백성들은 몽골군에 유린당했으며, 고려 지배층에 대한 불신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강화도 천도로, 고려 조정은 39년간(1232~1270년) 버텼고, 몽골도 함부로 하지 못했으며, 장기전이 시작되었습니다.
 

1232년: 처인성 전투

강화도로 도피한 직후, 기적 같은 승리가 있었습니다. 처인성(處仁城) 전투입니다.
처인성은 지금의 경기도 용인 일대로, 작은 산성이었고, 중요한 요충지는 아니었으며, 이름 없는 성이었습니다.
1232년, 몽골 장군 살리타이(撒禮塔)가 처인성을 공격했습니다.
고려 각지를 유린하고, 처인성에 도착했으며, "작은 성 하나쯤" 가볍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처인성을 지키는 자가 있었습니다. 김윤후(金允侯), 승려 출신의 장수였습니다.

 

 

김윤후, 누구인가?

김윤후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래 승려였다고만 전해지며, 속세 이름이 김윤후였고, 무술에 능했으며, 활쏘기가 뛰어났습니다.
몽골 침입 후, 환속(승려 그만두고 속인이 됨)하여, 무신 정권 산하에서, 군인이 되었고, 처인성 방어를 맡았습니다.
 
처인성 전투:

  • 몽골군이 성을 포위
  • 압도적 병력 차이
  • 하지만 김윤후가 굴하지 않음
  • 성문을 굳게 닫고 방어

몽골군이 계속 공격했지만, 처인성이 견뎠고, 며칠이 지나도 함락 안 되자, 살리타이가 직접 나섰습니다.
결정적 순간: 살리타이가 말을 타고, 성 아래까지 와서, 고려군을 도발했고, "빨리 항복하라!" 외쳤습니다.
김윤후가 활을 쏘았습니다. 성 위에서, 말 탄 살리타이를 향해, 화살을 날렸고,
명중! 살리타이의 가슴에 화살이 꽂혔고, 몽골 대장이 말에서 떨어졌으며, 곧 사망했습니다.

김윤후가 실라타이를 쏜 장면 / AI 생성이미지
김윤후가 실라타이를 쏜 장면 / AI 생성이미지

 
기적의 승리

살리타이가 죽자, 몽골군이 충격에 빠졌고, 사령관을 잃었으며, 사기가 꺾였고, 더 이상 싸울 명분이 없어, 철수했습니다.
처인성 전투, 고려의 승리였고, 작은 산성이, 세계 최강 몽골군을 물리쳤으며, 몽골 장수를 죽인, 최초의 승리였습니다.
 
의미:

  • 고려인들에게 희망
  • "몽골도 이길 수 있다"
  • 항몽 의지 고취
  • 김윤후 = 영웅

고려 조정이 김윤후를 포상했고, 상장군으로 승진시켰으며, 전국에 소문이 퍼졌고, "김윤후가 몽골 장수를 죽였다!", 백성들이 환호했습니다.
 

1253년: 충주성 전투?

김윤후의 활약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253, 충주성(忠州城) 전투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몽골 4차 침입(1253년) 때, 몽골 장수 야쿠(也窟)가 충주성을 공격했고, 김윤후가 방어했으며(또는 지원군), 야쿠를 사살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논란이 있고, 처인성 전투와 혼동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일부 사서에만 기록되어, 확실하지 않지만, 김윤후가 계속 항몽 전쟁에 참여한 것은 분명합니다.

충주 산성
충주 산성 / 출처 : 나무위키

김윤후 이후

김윤후의 말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언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기록이 없고, 처인성 전투 이후 역사에서 사라졌으며, 이름 없이 사라진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기억되었고, "처인성의 김윤후", "살리타이를 죽인 장수", 후대에 전해졌으며, 현재 용인에는 김윤후 장군 유적지가 있고,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매년 기념 행사가 열립니다.
 

평가

김윤후는 민중의 영웅입니다:

  • 승려 출신 (특권층 아님)
  • 나라 위해 환속
  • 작은 성에서 대승
  • 세계 최강 몽골 장수 사살
  • 고려인에게 희망

지배층이 강화도로 도망친 반면, 김윤후는 현장에서 싸웠고, 백성을 지켰으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고,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처인성승첩기념비
처인성승첩기념비 / 출처 : 용인일보

 


⚔️ 삼별초 (三別抄, 1270~1273년) - 끝까지 싸운 군인들

몽골과의 긴 전쟁

김윤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몽골 침략은 계속되었습니다.
 
30년간(1231~1259년) 6차에 걸쳐 침공했고:

  • 1차 (1231~1232년): 살리타이 침입, 처인성 패배
  • 2차 (1232~1233년): 강화도 천도 후
  • 3차 (1235~1239년): 5년간 지속
  • 4차 (1247~1248년): 최씨 정권 시기
  • 5차 (1253~1254년): 충주성 등
  • 6차 (1254~1259년): 최장기 침공

매번 고려 각지를 유린했고, 백성들이 살육당했으며, 재물을 약탈당했고, 귀족들은 강화도에서 버텼지만, 백성들은 지옥이었습니다.
팔만대장경 제작: 이 시기(1236~1251년) 몽골 침략을 부처님 힘으로 막으려고, 대장경 8만여 판을 새겼으며, 지금까지 남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습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해인사 팔만대장경 / 출처 : 나무위키

 
1259년: 화의

1259년, 고려가 결국 굴복했습니다.
30년간 버텼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고, 고종이 화의를 시도했으며, 몽골(원나라)과 협상했습니다.
 
조건은 굴욕적이었습니다:

  • 왕자를 몽골에 인질로 (태자 전)
  • 조공 바침
  •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
  • 사실상 속국

1270년, 원종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돌아왔고, 39년간의 강화도 시대가 끝났으며, 몽골(원)의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별초, 무엇인가?

삼별초(三別抄)는 고려의 특수 군대였습니다.
원래는 치안 유지 부대였고, 최씨 무신정권이 조직했으며, 야별초(夜別抄) - 좌별초 - 우별초 세 부대로 나뉘어, "삼별초"라 불렸고, 정예 부대였으며, 강화도 방어를 맡았습니다.
 

특징:

  • 최정예 군인들
  • 무신정권에 충성
  • 강화도 수비대
  • 항몽 의식 강함

1270년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고, 개경 환도를 명령하자, 삼별초가 반발했습니다.
"몽골에 굴복할 수 없다!", "끝까지 싸운다!", 지배층의 항복을 거부했고, 독자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삼별초 상사도
삼별초 상사도 / AI 생성이미지

1270년: 진도 항쟁

1270년 5월, 삼별초가 봉기했습니다.
지휘관 배중손(裵仲孫)이 이끌었고, 승화후 온(承化侯 溫, 왕족)을 왕으로 추대하고, "우리가 진정한 고려다", 선포했으며, 강화도를 떠나, 남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진도(珍島)에 정착했습니다. 전라남도 진도는, 섬이면서도 넓고, 방어에 유리했으며, 용장성(龍藏城)을 쌓고, 독립 정권을 수립했습니다.
 

삼별초 정권:

  • 승화후 온을 왕으로
  • 배중손이 실권
  • 1만여 군사
  • 백성들 일부 동조
  • "항몽 고려"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고, 경상도까지 세력 확장했으며, 고려 조정(원종)을 위협했고, 몽골(원)과 고려 조정이 놀랐습니다. "반란이다!", "진압해야 한다!"

진도 용장산성터
진도 용장산성터 / 출처 : 국가유산포털

1271년: 진도 함락

1271년 5월, 고려 조정과 몽골군이 연합해, 삼별초를 공격했습니다.
여몽연합군(고려+몽골)이, 진도를 포위했고, 육지와 바다에서 협공했으며, 1만 명 vs 수만 명이었습니다.
삼별초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용장성이 함락되었고, 배중손이 전사했으며, 승화후 온도 죽었고, 진도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삼별초 잔당이 다시 모였고, 새로운 지휘관 **김통정(金通精)**이 나타났으며, "끝까지 싸운다!", 더 남쪽으로 이동했습니다.
 

1271~1273년: 제주도 항쟁

삼별초 잔당이 제주도(당시 탐라)로 갔습니다.
한반도 최남단 섬으로, 도망칠 곳이었고, 김통정이 이끌었으며, 수천 명이 따랐습니다.
 
제주도에서 재건:

  • 항파두리성 (애월읍) 축조
  • 독립 정권 재수립
  • 계속 저항
  • 2년간 버팀

고려와 몽골이 또 쳐들어왔습니다(1273년 4월). 여몽연합군이 제주도 상륙했고, 삼별초와 최후 결전을 벌였으며, 치열한 전투 끝에, 항파두리성이 함락되었고(1273년 4월), 김통정이 전사했으며, 삼별초가 완전히 진압되었습니다.
3년간의 항쟁(1270~1273년)이 끝났고, 삼별초 전원 전사 또는 처형되었으며, "끝까지 싸운 군인들"의 비극이었습니다.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 전경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 전경 / 출처 : 국가유산포털

평가

삼별초에 대한 평가는 복잡합니다:
 
긍정적 평가:

  • 항몽 정신 (굴복 거부)
  • 민족 자존심
  • 끝까지 싸움
  • 의로운 저항
  • 반외세 투쟁

부정적 평가:

  • 무모한 저항 (승산 없음)
  • 백성 희생 (전쟁 지속)
  • 분열 초래 (고려 vs 삼별초)
  • 현실 무시

현대 재평가:

  • 일제강점기: 항일 정신과 연결
  • 해방 후: 민족 저항의 상징
  • 좌파: 민중 항쟁
  • 우파: 충절과 의리
  • 학계: 복합적 평가

삼별초가 이상주의적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패했고, 하지만 그 정신만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보여줬으며, 후대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 에필로그: 항쟁의 의미

몽골 지배와 원 간섭기

삼별초 진압 후, 고려는 원(元) 간섭기(1270~1356년, 약 80년)에 들어갔습니다.
 
원나라의 간섭:

  • 왕이 원나라 공주와 혼인 (부마국)
  • 왕 이름에 "충(忠)"자 (충렬왕, 충선왕...)
  • 정동행성 설치 (원나라 기구)
  • 조공과 공녀 (젊은 여자를 원에 바침)
  • 내정 간섭

하지만 고려는 완전히 멸망하지 않았고, 왕조가 유지되었으며, 정체성을 지켰고, 문화를 보존했으며, 언어를 지켰습니다.
 

공민왕의 반원 개혁

1356년, 공민왕(恭愍王)이 즉위하며, 반원(反元) 정책을 폈습니다. 원나라가 약해지자(홍건적의 난 등), 기회를 잡았고:

  • 정동행성 폐지
  • 친원파 숙청
  • 쌍성총관부 공격 (영토 회복)
  • 원나라 연호 폐지

고려가 자주성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이성계, 최영 등 장군들이 활약했으며, 왜구를 격퇴하고(이성계, 최무선), 국력을 회복했습니다.
 

세 영웅이 주는 교훈

최충헌, 김윤후, 삼별초. 세 사람(세력)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고려를 지켰습니다.
 
최충헌 - 권력자의 책임

  • 무신정권 독재자
  • 하지만 질서 확립
  • 개혁도 시도
  • 권력 = 책임

김윤후 - 민중의 힘

  • 이름 없는 승려
  • 불가능을 가능으로
  • 작은 성에서 대승
  • 민중도 영웅이 될 수 있다

삼별초 - 끝까지 싸우는 정신

  • 승산 없어도
  • 끝까지 저항
  • 자존심 지킴
  • 항쟁 정신

몽골 침략이 남긴 것

피해:

  • 30년간 전쟁
  • 백성 살육·약탈
  • 문화재 소실
  • 국토 황폐화
  • 80년 원 지배

저항:

  • 처인성, 충주성 승리
  • 팔만대장경 제작
  • 삼별초 항쟁
  • 정신적 자존심

영향:

  • 무신정권 약화 → 왕권 회복
  • 원과의 교류 (문물 전래)
  • 국제 감각 발달
  • 자주 의식 강화

현대적 의미
 

이 시대가 주는 교훈:
절망 속의 희망 - 김윤후처럼 불가능도 가능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 - 삼별초처럼 끝까지
책임 있는 권력 - 최충헌처럼 권력자의 의무
민중의 힘 - 지배층이 도망쳐도 백성이 지킴
특히 삼별초 정신은 현대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끝까지 싸운다", "자존심을 지킨다", 그 정신만큼은 후대에 영감을 주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 핵심 정리

세 영웅 비교

이름시기신분/역할주요 업적평가

 

무신정권 (1170~1270년, 100년)

1170년: 무신정변

  • 정중부, 이의방 등
  • 의종 폐위, 문신 학살
  • 무신 집권

권력 변천:

  •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최씨 정권 (1196~1258년, 62년):

  • 최충헌 (1196~1219)
  • 최우 (1219~1249)
  • 최항 (1249~1257)
  • 최의 (1257~1258)

최충헌

주요 업적:

  • 1196년: 이의민 제거, 집권
  • 교정도감 설치 (사병 조직)
  • 정방 설치 (인사권 장악)
  • 왕 4명 교체
  • 봉사십조 (10개 개혁안)

봉사십조 주요 내용:

  • 왕의 사치 금지
  • 토지 겸병 금지
  • 백성 세금 감면
  • 천민 차별 완화

김윤후 - 처인성 전투

시기: 1232년 장소: 처인성 (경기 용인)
배경:

  • 1231년: 몽골 1차 침입
  • 1232년: 강화도 천도
  • 살리타이 장군 공격

전투:

  • 김윤후 (승려 출신) 방어
  • 활로 살리타이 사살
  • 몽골군 철수
  • 고려 대승

의의:

  • 몽골 장수 최초 사살
  • 고려인에게 희망
  • 항몽 의지 고취

몽골 침략 (1231~1259년, 30년)

6차 침입:

  • 1차 (1231~1232): 살리타이, 처인성 패배
  • 2차 (1232~1233)
  • 3차 (1235~1239): 5년간
  • 4차 (1247~1248)
  • 5차 (1253~1254)
  • 6차 (1254~1259)

고려의 대응:

  • 1232년: 강화도 천도
  • 각지에서 저항
  • 1236~1251년: 팔만대장경 제작
  • 1259년: 화의

결과:

  • 고려 사실상 속국
  • 1270년: 개경 환도
  • 원 간섭기 시작

삼별초 항쟁 (1270~1273년, 3년)

배경:

  • 고려의 몽골 항복 거부
  • 정예군 삼별초 봉기

경과: 1270년 5월: 강화도 봉기

  • 배중손 지휘
  • 승화후 온 추대
  • 진도로 이동

1270~1271년: 진도 항쟁

  • 용장성 구축
  • 1271년 5월: 함락
  • 배중손 전사

1271~1273년: 제주도 항쟁

  • 김통정 지휘
  • 항파두리성
  • 1273년 4월: 최후 진압
  • 김통정 전사

평가:

  • 항몽 정신
  • 민족 자존심
  • 하지만 현실적 한계
  • 논란의 대상

원 간섭기 (1270~1356년, 80년)

지배 형태:

  • 부마국 (왕이 원 공주와 혼인)
  • 왕 이름에 "충"자
  • 내정 간섭
  • 조공·공녀

극복:

  • 1356년: 공민왕 반원 개혁
  • 정동행성 폐지
  • 영토 회복
  • 자주성 회복

📚 참고 & 방문 정보

유적지

강화도:

  • 고려궁지 (인천 강화)
  • 외규장각터
  • 강화역사박물관

처인성:

  • 김윤후 장군 유적지 (경기 용인)
  • 처인성터
  • 김윤후 장군 동상

진도·제주:

  • 용장성터 (전남 진도)
  • 삼별초 항쟁 기념관
  • 항파두리성터 (제주 애월)

팔만대장경:

  • 해인사 (경남 합천, 유네스코 세계유산)

추천 도서

『무신정권』 『몽골 침략과 고려』 『삼별초 항쟁사』 『김윤후 연구』

드라마/영화

드라마 『무인시대』(2003~2004년, KBS)
무신정권 영화 『님은 먼 곳에』(2008년)
삼별초 다큐 『역사스페셜』- 처인성 전투, 삼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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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500년의 시작!


[Korean History Figures Part 6] Resistance Against the Mongols: Choe Chung-heon, Kim Yun-hu, and the Sambyeolcho

Prologue: An Era of Desperation In 1170, the Musin Rebellion (Military Coup) upended Goryeo society. Military officials seized power from the civil aristocrats, turning the king into a puppet. This military rule lasted for 100 years, with Choe Chung-heon at its center. Then, in 1231, a greater disaster struck: the Mongol Empire invaded. For 30 years, Goryeo faced the world's strongest army. The court fled to Ganghwado Island (1232), leaving the people behind to suffer. Yet, amidst the chaos, heroes emerged to protect the nation.


1. Choe Chung-heon (1149~1219): The Strongman of the Military Regime

  • Rise to Power: Following the chaos of the initial 1170 coup, Choe Chung-heon seized control in 1196 by removing the tyrant Yi Ui-min. This began the Choe Military Rule, which lasted 62 years through four generations of his family.
  • Dictatorship & Reform:
    • He established the Gyojeongdogam, a private government body to control state affairs and surveillance.
    • He held absolute power, dethroning four kings and enthroning puppets to suit his needs.
    • However, he also proposed the Bongsa Sipjo (Ten Injunctions), a reform plan to curb royal luxury, correct land corruption, and alleviate the suffering of the people.
  • Legacy: While a ruthless dictator who suppressed slave rebellions (like the Manjeok Rebellion), he brought stability to the chaotic government, allowing Goryeo to prepare for the coming Mongol storm.

2. Kim Yun-hu (?-?): The Hero of Cheoinseong

  • The Mongol Invasion (1231): The Mongols, led by General Sartai, swept through Goryeo. In 1232, while the royal court fled to the safety of Ganghwado Island, the Mongols attacked Cheoinseong (modern-day Yongin), a small earthen fortress.
  • The Miracle Victory: Kim Yun-hu, a monk-turned-soldier, led the defense. Despite being outnumbered, he rallied the people. In a decisive moment, Kim Yun-hu shot an arrow that killed the Mongol Commander Sartai.
  • Impact: Shocked by the loss of their leader, the Mongol army retreated. It was the first major victory against the invincible Mongol army, proving to the Korean people that the invaders could be defeated. Kim Yun-hu remains a symbol of the "people's hero" who fought when the government fled.

3. Sambyeolcho (1270~1273): The Soldiers Who Fought to the End

  • Refusal to Surrender: After 30 years of war, the Goryeo court surrendered to the Mongols in 1259 and agreed to return the capital to Gaegyeong in 1270. However, the Sambyeolcho (Elite Patrol Troops of the military regime) refused to accept this humiliation.
  • The Three-Year Resistance:
    • Jindo Island (1270-1271): Led by Bae Jung-son, they established a maritime kingdom and threatened the Goryeo-Mongol alliance.
    • Jeju Island (1271-1273): After Jindo fell, they moved to Jeju under Kim Tong-jeong, building the Hangpaduri Fortress for a final stand.
  • The End: In 1273, a massive Goryeo-Mongol allied force crushed the rebellion. Though they were annihilated, the Sambyeolcho is remembered for their unyielding spirit and national pride.

Epilogue & Historical Significance

Following the resistance, Goryeo entered the "Yuan Intervention Period," effectively becoming a vassal state for 80 years until King Gongmin later restored sovereignty.

  • Choe Chung-heon shows the complexity of power—a dictator who stabilized the nation.
  • Kim Yun-hu represents the resilience of the common people.
  • Sambyeolcho symbolizes the spirit of resistance and national identity.

Although the war ended in a peace treaty, the struggle of these figures left a lasting legacy: the spirit of never giving up, even against impossible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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